<서 희(徐熙)>가 벌인 역사 담판

실타래의 실 끝을 찾기가 쉽지 않은 역사 왜곡과 관련하여 오랜 이야기지만 고려시대의 서희 장군이 요의 장수와 나누었다는 대화의 논리가 생각나는 때다.

요나라(거란)의 소손녕과 고려의 서 희(徐熙)가 벌인 역사 담판이다. 그 역사 담판의 주제도 바로 고구려의 정체성 문제였다.

소손녕은 “당신네 나라는 신라의 땅에서 일어났고 고구려 땅은 우리가 차지했는데, 당신네가 이를 조금씩 먹어들어 왔다”고 주장했다. 바로 이것이 고려로 쳐들어온 거란의 논리였다.

이에 서 희는 “그렇지 않소. 우리나라가 바로 고구려의 옛 땅이오. 그렇기 때문에 나라 이름을 고려라고 하고 평양에 도읍하였소. 만약 국경을 따진다면 귀국의 동경도 모두 우리 국경 안에 있던 것인데, 어찌 조금씩 먹어들었다고 할 수 있소”라고 당당하게 반박해 결국군사를 단 한 명도 희생시키지 않고 적을 물러나게 하였다.

사실 거란은 과거 고구려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고려와 고구려의 정체성을 가지고 논의할 자격이 조금은 있었다.

그러나 당시 북경 남쪽을 차지했던 중국의 송나라 정도가 고구려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한다면 설득력이 있는 것인가?

지금 한·중 간의 고구려 역사전쟁이 바로 고려시대와 같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실제 ‘중국 전 역사를 보아도 소수민족이 한족을 지배한 것이 3분의 1을 넘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소수민족 문제에 대해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인데,

실제로 중국 역사는 5호16국,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 등 소수의 북방 이민족이 끊임없이 한족을 지배했다. 당나라 때는 티벳족(당시 토번)에 의해 수도 장안이 점령되기도 했다는데,

이런 상태에서 피아(彼我)가 구분이 안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고 당시의 서희 장군과 같은 올곧은 논리가 작금에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어찌 보면 너(彼)는 너가 아닐 수 있고 동시에 나(我)도 나가 아닐 수 있다는 말이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