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 숫자는 6천명이 맞습니다.

인용하신 책의 숫자는 좀 과장된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3.1사건 이후 사이토 총독이 부임해서 헌병경찰제도를 폐지하고 보통경찰제로 바꾸었는데, 그와 동시에 경찰관 숫자를 확충해서 경찰의 숫자는 14,500명에서 16,90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14,500명이라는 숫자 자체가 3.1 사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경찰관이 대폭 늘어난 것이고요, 그 이전에는 1910년부터 1919년까지 6000명으로 일정한 숫자였습니다.

지금 제가 보고 있는 자료는 스기모토미키오씨의 이라는 통계중심의 연구서인데 아마 1919년을 기점으로 총독부의 통계방식에 변화가 생겨서 헌병대의 인원을 경찰인원에 합계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일본어에 서툴러서 본문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당시 경찰제도가 상당히 복잡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무튼 이 16,900명은 그 뒤로 거의 늘어나지 않았고 조선인구가 2천만이 넘은 1940년대에도 경찰관의 수는 2만명 수준을 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숫자는 물론 경찰보조원까지 포함한 숫자인데, 위에 인용하신 책에 나와있다는 헌병대 2만명과 헌병보조원 20만은 어떻게 산출된 숫자인지 의문이 가는군요. 사이토 총독 이후에는 헌병은 엄연히 군인이고 치안문제에서 손을 뗀 상태인데 용산에 주둔한 20사단 전체 병력이 2만명 안팎이었을텐데 (함경도 나남의 19사단은 나중에 배치되었죠) 그렇다면 20사단 전체가 헌병이었다는 말인지. 게다가 헌병보조원 20만은 너무 말이 안되는 숫자라서 언급할 필요가 없는것 같습니다만.

아무튼 일제시대 초기에 헌병이 얼마나 치안에 관여했는지 모르지만 경찰 6천명은 근거없는 숫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스키모토씨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인구천명당 경찰관 숫자에서 대만은 3에서 4였지만 조선은 0.4에도 못치치고 있습니다. 1920년대 이후에도 1.0안팎에 불과합니다. 당시 조선의 치안이 매우 안정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