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적(현대-도요다) 미국 자동차 제국 몰락

‘68년 연속 세계 1등 신화(神話)’가 막을 내리나. 세계 최대 자동차업체이자 미국 제조업의 심장인 GM(제너럴모터스)이 몰락 위기에 몰리고 있다. ‘영원한 제국’일 것으로 굳게 믿었던 GM이 하루아침에 산소마스크를 쓴 중환자로 쇠락해가는 모습을 보고 있는 미국인들은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전혀 예상치 못했던 동방의 적(敵), 도요타·현대에 밀려 추락했다는 사실에 미국인들은 자존심이 무척 구겨진 표정이다.

UAW(전미자동차노조)와 160억달러의 의료비 지원 삭감에 합의하면서 한 고비를 넘기는 듯하던 GM이 또다시 대형악재들에 비틀거리고 있다. 국제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1일 GM의 회사채 등급을 기존 ‘Ba2’에서 두 단계 낮은 ‘B1’으로 강등했다. 또 GM의 10월 자동차 판매실적(미국 내 기준)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23% 격감했다는 충격적 발표가 나왔다.

그 여파로 1일(현지시각) 뉴욕증권거래소에선 GM·포드·다임러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업체 주가가 일제히 하락하며 경고음을 울렸다.

◆미국인도 외면한다=뉴저지주 버겐카운티에 사는 주부 메리 맥퍼슨(42)은 10년째 도요타 캠리를 몰고 있다. 잔고장이 별로 없고, 타다가 팔아도 높은 중고차 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미국차는 3년만 지나면 잔고장이 많다”며 “고장 났을 때의 시간적 정신적 낭비를 생각하면 일본차가 여러모로 편리하다”고 말했다.

뉴욕 맨해튼의 자동차 매매회사 포탐킨의 폴 리(49) 판매원은 “일본차는 부품값이 미국차에 비하면 2~3배 가량 비싸지만 고장 횟수가 20~30%에 불과해 주부들의 70% 가량이 일본차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GM의 추락원인에 대해 “소비자들의 변화된 요구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날로 줄어드는 판매량=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져만 가는데 GM의 대응은 병든 소처럼 굼뜨기 그지없다. 고비용과 비효율성을 개혁하는 구조조정작업도 노조(UAW)의 반발에 부닥쳐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지난 2000년 490만대에 달하던 GM의 미국 내 자동차 판매대수는 매년 감소해 지난해 460만대로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일본 도요타는 160만대에서 206만대로, 한국의 현대차는 24만대에서 41만대로 판매대수가 급증했다. 얼마전 도요타는 내년 중 GM을 제치고 1등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생산 효율성이 떨어지면서 경영수지도 악화되고 있다. GM은 올 들어서만 북미시장에서 무려 45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GM경영자의 판단 잘못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리 아이아코카 전 크라이슬러 회장은 “GM이 시대의 흐름을 잘못 읽어 대형 SUV(스포츠 유틸리티 비이클)인 허머 생산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가 고유가 추세가 이어지면서 판매량이 급감했다”고 말했다.

◆과다한 의료·퇴직 복지비용에 스스로 좌초=GM 위기의 또 다른 원인은 의료·퇴직연금 등 후생복지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는 점이다. 미국 최강 노조인 UAW는 과거에 GM·포드·크라이슬러 등 ‘빅3’와의 협상에서 회사 부담으로 퇴직자들에게 평생 의료혜택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이 때문에 GM은 차를 한 대 만들 때마다 1500달러씩 후생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GM의 후생비용은 매년 56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GM은 최근 노조와 대규모 의료비용 삭감에 합의했지만, 실제 효과는 2008년 이후에나 나타나게 되어 있어서 재무구조 개선에 당장 큰 도움은 못 된다고 월가의 애널리스트들은 분석하고 있다. 또 종업원 연금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15억달러를 추가로 적립해야 할 상황이다. 자회사였던 델파이의 분사(分社) 당시 보증해 준 델파이 종업원의 퇴직연금 120억달러도 최근 델파이의 파산신청으로 수면 위로 불거져 나왔다.

◆미국 경제에 일파만파 가능성=GM의 위기는 미국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GM과 할부금융자회사인 GMAC가 발행한 각종 채권과 대출은 2800억달러로 GE(제너럴일렉트릭)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크다. 금융기관들은 GM이 조만간 살아나지 않으면, 투자부적격이 된 이 불량채권을 헐값에 처리해야 하고 그만큼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 이 모든 문제가 순탄하게 해결되려면 GM이 인력감축, 잉여시설 폐쇄, 복지비용 축소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성공해 경영 정상화를 이뤄내야 한다. 하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프루덴셜증권의 마이클 브루네스틴 연구원은 “아시아 경쟁업체들의 약진 때문에 GM의 시장점유율이 장기적으로 계속 하락할 가능성이 높고, 각종 연금·의료비 삭감작업이 만만치 않아서 GM의 미래를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뉴욕=김기훈특파원 [블로그 바로가기 kh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