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美人)이 남의 칼 빌려 살인

한밤중에 도둑이 들었다. 도망갈 곳을 터놓고 소리를 질러 도둑이 스스로 도망가게 할 것인가? 아니면 도망 갈 곳을 모두 막아놓고 도둑을 궁지에 몰아 잡을 것인가? 이런 상황에 대하여 손자병법은 ‘위사필궐'(圍師必闕·포위된 적은 탈출구를 열어주어야 한다)의 충고를 하고 있다.

쥐도 도망갈 곳이 없으면 고양이에게 덤빈다고 하지 않는가. 북한 핵실험이라는 현 위기상황에서 ‘위사필궐’은 적절한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상대방보다 내가 월등한 힘을 가지고 있더라도 도망갈 여지를 주며 압박하는 것은 강자의 여유다.

여기까지가 미국의 대북정책이었어야 했다. 그러나 부시 정권은 손자병법 제22계 ‘관문착적'(關門捉賊·적이 도망갈 수 있는 모든 문을 잠그고 적을 사로잡는다)식의 정책을 선택했다. 힘의 논리를 내세우는 부시 정권은 이라크 전쟁을 일으켜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으나 그 명분이었던 대량살상 무기를 찾아내지 못했다.

또한 중동전 기지 활용 거래 안으로 인도와는 핵 교류 협상을 하고, 같은 핵보유국인 파키스탄에는 이해관계에 따라 협박을 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200여 기의 핵무기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미국의 대외 핵정책의 이중성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시 정권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단정지어놓고 경제봉쇄 등 북한으로 통하는 모든 문을 닫아버린 채 6자회담만을 종용해 왔다. 이것은 마치 손자병법 제3계의 ‘차도살인'(借刀殺人·남의 칼을 빌려 적을 물리친다)과도 같다.

이와 같은 이라크 붕괴를 목격한 북한은 건질 것 없는 6자회담을 외면한 채 핵보유 방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일이 이렇게까지 된 것은 UN 등 국제사회가 미국의 그릇된 일방통행식 대북 정책을 묵인해 온 데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 분위기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책임을 거론하기보다는 그저 불장난 저지른 북한만을 탓하며 분열되어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현 상황은 우리 국민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책임 소재를 따지고 정치공방·이념공방이 난무해서는 안 된다.

우선 발등의 불부터 꺼놓고 볼 일이다. 책임논리·정치논리·이념논리에 앞서 우선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어야 한다. 가슴 한쪽으론 북한을 이해하면서도 정작 입으로는 미국 입장만을 대변하는가 하면 또 그것을 방관하며 침묵하는 비겁함을 우리는 반성해야 할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생존권 보장 없는 ‘선 핵 포기’는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핵실험은 미국의 제재에 대한 방어적 대응조치이며 핵 억제력으로 자주적 안전을 확보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핵 이전 의사가 없음을 이미 천명하였고, 궁극적으로는 한반도 비핵화 통일에 동의하고 있으며, 미국과 직접 협상이 이루어지고 국제사회와의 관계가 개선되면 핵을 전면 포기하겠다는 입장이다.

국제사회는 ‘이런 북한을 어떻게 믿느냐’며 계속해서 제재를 통한 파국으로만 몰고 갈 것이 아니라, 절체절명(絶體絶命)의 벼랑 끝에 선 북한의 다급한 처지를 이해하고 더 이상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미국은 이제까지의 관문착적식의 대북 압박정책을 버려야 한다.

북한과의 직접협상 불가라는 강국으로서의 자존심도 버려야 한다. 대북제재가 능사는 아니다. UN과 중국·러시아·일본 등 국제사회 또한 북한과 미국의 직접 대화 해결을 촉구해야 할 것이다. 진정으로 비핵화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바란다면 말이다.

한국 정부 및 각 계층도 지난 외세침탈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더 이상 강국들의 논리에 부화뇌동하지 말아야 한다. 북한과 미국의 잘못을 동일선상에서 판단해야 한다. 동서 냉전의 부산물로 세계유일의 분단국가인 남과 북은 더 이상 강대국들의 놀음판이 될 수 없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 정치 군사적인 볼모로 계속 잡혀있기에는 지난 세월 흘린 피가 너무 많다.

우리 민족도 다른 나라처럼 남과 북이 다시 하나 되기를 원한다. 더 이상 갈 데가 없다. 북한은 이제부터라도 경거망동을 자제하고 국제사회의 비핵화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동시에 평화를 위한 세계질서 유지의 책임을 자임하고 있는 미국은 북한과의 직접 대화에 나서 동북아 평화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계산 논단] 남의 칼을 빌려 도둑을 잡을 것인가
지거(조계종 보현의집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