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릴 답변이 되었는가?

신라는 당에 신하의 예를 갖추어 많은 것을 얻었다. 신라군의 목숨을 아껴서 당군이 대신 죽게 하였고, 영토와 백성을 3배나 늘렸고, 나라를 지켰고, 지속적인 주체성과 자주성을 확보하였고, 백제와 고구려의 망국민을 해방시켰으며, 민족을 창조하였다.

이런 것이 사대주의라면 얼마나 좋은 것인가? 결코 굴욕과 동의어 취급할 수가 없다. 事大에서 事는 ‘섬긴다’는 의미도 있지만 ‘부린다’는 의미도 있다. 아니 ‘섬기며 부린다’가 더 정확한 의미일 것이다.

事라는 말과 정확하게 의미내역이 일치하는 우리말이 없기 때문에 섬기다 부리다 등등으로 훈역을 한 것인데 事에서는 섬기다와 부리다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의미를 가진 것이다. 섬김이 곧 부림인 것이다. 우리말로 옮겨놓으니까
분리된 의미로 되고 말았지만 事에서 부림과 섬김은 어디까지이나 同時態인 것이다.

내가 어릴 때에는 부모님을 섬기며 생존을 이어왔는데, 이는 동시에 부모를 나의 부양자로 부리면서 살아왔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일면을 가지고 전면인 듯하게 말하는 것은 왜곡이다.

중동의 쬐끄만 나라 이스라엘의 대미 사대외교보다 신라의 대당사대외교는
수백배 더 큰 이익을 남기는 장사였다.

사전을 찾아보면 사대란 주체성없이큰 것에 기대어 작은 것의 생존을 꾀하는 경향. 으로 되어있다. 그러나섬김도 부림도 주체성이 없이는 않된다.자주정신이 없고서는 안되는 것이며 주체성과 자주성을 유지발전시키고자 섬김과 부림을 하는 것이다.

사대는 작은 것과 큰 것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방법론인 것이다.

대와 소가 대립적으로 관계한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까지의 국제관계에서는 정글의 법칙이 작동외어왔다. 어김없이 대소가 대립할 때에는 소가 깨어져서 도태되어온 것인데,

고구려도 마찬가지로 자기 국력에 대한 냉정한 반성이 없이 국력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는 만용으로 망했던 것이다.

이런 것을 ‘굴욕’이라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