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올해는 ‘경술년(1910년) 국치’ 100년이 되는 해이다. 흔히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며, 미래의 이정표라고 한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과거의 소산이고, 과거의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은 보다 나은 내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교훈이 된다는 뜻이다.독립운동가들이 매년 8월 29일을 맞이하며, 왜 국권을 빼앗겼는지 자문하며, 반성의 시간을 가진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뼈아픈 자기반성은 협동과 단결의 중요성을 일깨웠고, 어떻게 하면 빼앗긴 국권을 되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도록 이끌었으며, 끝내 독립과 광복‧해방의 길로 안내해 주었다.흔히 우리는 ‘반면선생’을 최고의 스승이라고 한다. 씁쓸함이 묻어나는 말이지만, 무엇이 나빴고, 어디가 부족했고, 왜 잘못되었는지를 일깨워주기에, 그래서 착오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는 슬기를 주기에, 반면선생을 ‘제1’의 스승으로 꼽는 것일게다.그랬다. 8월 29일은 국권 피탈을 초래한 한국근대사의 과오를 반성하고, 일제 타도의 결의를 재확인하는 순간이었다. 1944년 8월 29일 오후 1시 충칭에서 거행된 ‘국치 34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식’은 좋은 예가 된다.  이날 행사에서는 “한시바삐 민족적 치욕을 씻고 ‘혁명임무’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첫째, 계급‧당파‧주의‧신앙을 불문하고 임시정부 깃발 아래로 통일한다. 둘째, 임시정부의 리더십 아래에서 각종 반일투쟁과 무장투쟁을 적극 전개한다. 셋째, 연합국의 일원으로서 지위를 쟁취하여, 반파시스트 전쟁에 참여한다. 넷째, 각 계급‧당파는 독립을 완성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행복의 신 국가를 건설할 때까지 영원히 단결‧합작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한국독립당‧조선민족혁명당‧조선민족해방동맹‧조선무정부주의자총연맹의 연명으로 발표된 이 선언문은 국치일 기념행사가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단결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확인해 준다.또한 올해는 독립전쟁 최대의 승전보를 전한 청산리전투 90주년이 되는 해이다. “부인들은 애국하는 一片의 赤誠으로써 음식을 준비하여 가지고, 위험을 무릅쓰고 彈雨가 쏟아지는 전선으로 용감히 나아가, 전투에 지친 군인들에게 음식을 공급하고 위로하였다”(‘女子의 一片丹誠’. 독립신문 1920년 12월 28일)고 하는 재만 한인들의 헌신적인 지원과, “자신의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용감히 싸운 독립군 병사의 ‘군인정신’이 일본군의 사기를 압도하였기에”(‘大韓軍政署報告’, 독립신문 1921년 1월 18일), 큰 승리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자신을 돌보지 않는 헌신과 자신의 책무를 다하려 한 책임의식이 승전의 원천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올해는 안중근 의사가 순국하신지 100주년이 되는 해ㄹ이기도 하다. 안중근 의사는 자신의 의거가 ‘대한국 의병 참모중장’으로서 동양평화를 지키기 위한 소임을 다한 독립전쟁의 일환이었음을 밝혔고 한‧중‧일 세 나라가 참여하는 동양평화회의체를 조직하고, 공동은행의 설립과 공동화폐의 발행, 평화군의 육성 들을 통해, 제국주의 침략이 아닌 공동번영을 위한 디딤돌을 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그가 꿈꾸었던 ‘동양평화의 이상’이 부활하여 재음미되고 있다. 이렇듯 올해는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100년 전의 어리석음과 착오를 곱씹어 봄으로써, 다가올 100년을 달려 나아갈 지혜를 얻어야 할 일이다. 그것은 90년 전 적은 병력으로써 연합작전을 통해, 우세한 일본군을 궤멸시킬 수 있었던 청산리전투의 대승을 기리는 일이 될 것이며, 100년 전 우리의 곁을 떠나신 안중근의사의 애족정신을 되살리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