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정위의 종족적 민족주의

왕정위의 종족적 민족주의 혁명파도 기존 문화주의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위에서 서술한 문화주의가 중화제국의 정체성으로 작용했지만, 그것은 주로 상층 지식인 엘리트(“신사층”)에 국한된 정체성이었다는 취약성을 갖는다. 다수의 피지배민에게는 문화보다도 에스닉 정체성이 보다 강하게 나타났다는 점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반 민중의(popular) 반이민족 정서는 크고 작은 수많은 사건들을 통해 표출되었다. 소수민족의 반한·반만 폭동 뿐만 아니라 한족에 의한 反蒙, 反滿 사건들은 역사기록 속에 다수 발견된다. 혁명파의 종족적 민족주의는 구래의 문화주의가 소화내지 못하고 남긴 (특히 한족의) 에스닉 정체성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 왕정위는 “서로 다른 민족이 함께 국민이 되면 국가의 이해와 각 민족의 이해가 서로 배치되며, 따라서 각 민족은 국가를 고려치 않게 된다” “그러한 국가는 결국 분열되거나, 하나의 민족이 다른 민족을 압제하게 된다” “종족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정치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따라서 정치혁명을 이루고자 한다면 반드시 동시에 종족혁명을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18) 그의 이러한 종족적 민족관은 정치적 단위와 민족적 단위가 일치해야한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왕정위의 이러한 종족혁명론이 블룬츨리의 학설에 크게 영향받았던 것은 분명하다. 그의 국민과 민족에 대한 구별도 블룬츨리의 그것에 근거하고 있었다.19) 다만 그가 주목했던 것은 서로 다른 민족이 국민을 구성할 때 발생하게 되는 모순과 충돌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는 사실 블룬츨리가 민족 혼합 시에 발생하게 되는 폐해에 대하여 적게 언급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하면서 “후일 다른 학자의 학설을 취하여 보충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20) 결국 그는 후일 A. 로웰로부터 종족혁명의 필요성에 대한 근거를 찾기도 했다.21) 요컨대, 왕정위가 이해한 민족이란 블룬츨리의 나찌온(Nation)이었으며, 그는 국민과 민족 개념의 구분 위에서 일민족-일국민-일국가의 건설을 주장한 것이었다. 그에 의하면 그러한 민족 국가(“民族的國家”)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특징을 갖기 때문에 서로 다른 민족이 국민을 구성하는 것보다 우월한 것이라고 본다. “첫째는 平等이다. 유사이래 전쟁이 있었다. 전승한 민족은 패한 민족을 소와 말처럼 부렸다……만약 하나의 민족이라면 서로 경쟁하는 자들이 모두 형제이므로 자연스런 평등이 이루어진다. 둘째는 自由이다. 나의 族類가 아니면, 그 마음이 다르고, 싸움에 이긴 민족이 진 민족을 속박하고 압제한다……만일 하나의 민족이라면 함께 마음과 힘을 합하니 자유가 반드시 골고루 분배된다”22) 왕정위의 주장은 결국 종족중심적 민족주의의 한 표현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