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옥선 할머니의 가슴아픈 사연을 아시는지요?

종군 위안부 이옥선 할머니의 가슴아픈 사연을 아시는지요?

집이 가난했던 부산 소녀 이옥선은 열여섯살이 되던 해, 학교도 보내주고 밥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부산진역앞 우동가게에 양딸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학교를 보내주기는커녕 온갖 허드렛일에 술접대까지 시키다가 울산의 한 기생집에 옥선을 팔아넘겨버렸답니다. 열여섯이 되던 1942년 7월, 기생집의 심부름으로 길거리에 나온 옥선은 백주대로에서 남자 2명에 의해 강제납치되었구요. 그 길로 15명의 다른 여자들과 함께 울산역을 거쳐 중국 도문역까지 끌려간 옥선은, 다시 기차에 실려 연길의 일본군 비행장까지 실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일본군은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옥선을 겁탈한 후 부대 인근에 위안소 건물을 새로지어 여자들을 수용했습니다. 평일에는 군인들이 보통 10명씩 다녀갔고, 주말엔 30-40명가지 다녀갔다고 하구요. 위안소 생활을 하던 중 첫 월경을 경험한 옥선은, 생리 중에도 손님을 받도록 강요당했답니다. 군인들이 남긴 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군인들이 입다 버린 내의와 양말로 겨우 몸을 가릴 정도로 위안소 생활은 혹독했다고 합니다. 매독이 걸린 옥선이 군병원에서 주사를 맞아도 차도가 없자 위안소 주인은 군의관으로부터 얻어온 수은 증기를 옥선의 사타구니에 쐬였습니다. 그로써 매독은 치료되었지만 옥선은 영구불임이 되고 말았답니다. 1945년, 종전을 앞두고 만주지역의 전황이 격렬해지자 일본인들의 손에 이끌려 이리저리 피난을 다니던 옥선은 산 속에서 광복을 맞았습니다. 비로소 일본인들의 손에서 벗어난 옥선은 며칠간 구걸을 하며 거리에서 연명하던 중 일본군 비행장에 징용으로 끌려와 있었던 한 조선인 남자를 우연히 만나 그 길로 용정시 팔도진에 있던 남자의 집으로 가 결혼을 했습니다. 하지만 기구한 운명은 이것으로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결혼식을 올린 지 나흘만에 입대한 남편은 영영 다시 돌아오지 않았답니다. 10여년간 시부모를 모시고 농사일을 하던 옥선은 시아버지의 권유로 재혼한 후 그 지역에 계속 머물며 살았습니다. 2000년 5월, 이옥선 할머니는 58년만에 남녘의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부모형제는 이미 모두 작고한 뒤였습니다.

일본 정부는 종군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인함은 물론이고 미국 하원에서 추진 중인 일본 정부의 공식사과를 촉구하는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의 처리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의 위안부 만행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와 진정한 반성을 촉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