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으로 톡톡히 재미 본, 일본!

일본이 1854년 3월 미국과 을 맺고, 개항한데 이어, 내부혼란기를 거쳐, 1867년 12월 막부를 폐지하고 를 수립한 이후,

신정부가 추진한「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통하여, 일본은 과 이를 바탕으로 한 에 초점을 맞추어,
첫 군사행동으로서 1874년 대만에 출병한다.

현재의 오끼나와 귀속을 둘러싸고 청과 대립해 오던 일본이, 청에 의한 류큐어민의 피살 사건을 핑계로 대만에 출병하여 승리함으로써, 으로부터 보상금을 받아내게 되는 데, 이것이 일본이 거둔 첫 번째 전과이다.

두 번째는 이다.
1894년 때 조선의 요청으로 청국이 한반도에 출병하자, 일본정부는 이에 대항하여 군대를 파견, 7월말 양국군은 한반도에서 충돌하였다.

이때 일본은, 정부와 정당이 정쟁을 멈추고 거국일치로 전쟁에 임하여 승리함으로써, 청은 요동반도. 대만 등을 일본에게 할양하게 되고 배상금을 지불하게 되는데,
이 배상금이 당시 일본 국가세입의 약 3배정도였기 때문에, 일본은 이 배상금 덕분에 를 확립하고, 군사공업과 중공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다음은 이다.
일본이 의 승리에 따라 군비확장과 산업진흥에 적극적으로 나서던 그 즈음, 러시아가 대군을 만주에 계속 주둔시키고 한국에도 영향력을 강화하자, 일본은 1902년 영국과 을 맺고, 1904년 2월 러시아와 전쟁을 단행, 그 결과 일본은 여순. 대련의 조차권과 장춘 ↔ 여순 간의 철도권익, 카라후토(華太) 남부의 할양 등을 인정받았으나, (불행히도 일본이 그토록 원하던)배상금은 없었다.

러일전쟁 후, 일본은 미국. 영국의 승인하에 한국에 통감부를 두고, 외교.내정.군사의 실권을 계속 빼앗아 갔으며, 통감 암살사건을 계기로 1910년 한국을 병합하여 조선총독부를 두고 한국의 식민지지배를 시작한 것이다.

보충 설명하자면, 은 동아시아에서 식민지분할을 위한 열강간의 세력각축의 결과였으며, 일본의 배후에는 영국과·미국의 자본이, 러시아의 배경에는 프랑스의 자본이 각각 지원한 이었다.
이 전쟁을 계기로 한국은 제국주의 열강의 승인 내지 묵인하에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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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의)긴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일본은 오로지 전쟁을 통하여, ‘톡톡히 재미를 보아온’ 나라이다.
의 뒷그늘에는 당시 열강이었던 미국과 영국이 있었다는 역사의 교훈과….우경화(右傾化)로 치닫고 있는 일본을 바라보면서,
현재 우리의 운명을 또 다른 열강(=미국)의 손에 의탁하고 있다는 점이 아주 찜찜하다.

스스로 버텨낼 수 있는 이 없고서는, 그 어느 것도 말짱 ‘꽝’이다.
설령, 621조 원?을 들여서라도 우리나라는 우리가 지켜야 되는 것 아닌가?